[소설] 한강 - 흰 (The Elegy of Whiteness)

한강 _ 흰 (The Elegy of Whiteness)

 

채식주의자를 읽고 느꼈던 거지만 이 책을 읽으니 마음속에서 느꼈던 작가의 이미지가 좀 더 확고해졌다. 물론 개인적으로 느끼는 거지만... 이 작가는 꽤나 어둡고 기운 빠지는 글을 쓰는 것 같다. 슬픔을 담담하게 표현해낸다고 해야 하나?

기운 빠진다는게 나쁜 뜻은 아니고, 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뭔가 산전수전 다 겪어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의 글을 읽는 기분이 든다.

 

현실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대리만족 소설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런 글이 그다지 취향은 아니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고 나면 '아 이런 글도 있구나'라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아직은 그거에 만족한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의도했던 바를 내가 아직 깨닫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 감정을 같이 느끼고 공감하는 날이 오겠지?

 

 

이 책은 수필의 느낌이나는 단편적인 글이다.

'흰'이라는 제목처럼 '흰 것에 대해 쓰겠다'는 작가의 결심으로 쓰여진 글.

강보

배내옷

소금

얼음

흰 새

백발

수의

 

이런 흰색을 나타내는 제목과 관련된 작가의 경험이 쓰였는데,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여러 개의 '흰'을 나타내는 단어들 중에 '어머니의 첫아이'에 관련된 글들이 자주 등장한다.

어머니의 경험을 듣고 작가가 마음속에 응어리진 감정들을 이 글에 담아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소개하는 '작가의 말'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한 단어씩 적어갈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이 책을 꼭 완성하고 싶다고, 이것을 쓰는 과정이 무엇인가를 변화시켜줄 것 같다고 느꼈다.

환부에 바를 흰 연고, 거기 덮을 흰 거즈 같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고.

 

 

어머니의 첫아이의 이야기 중 <경계>라는 제목의 글이 기억에 남아서 적어본다.

 

<경계>

그 아이는 칠삭둥이로 태어났고, 아랫목에 눕혀둔 아기는 더 이상 울지도, 눈을 뜨지도 않았다. ... 하지만 새벽이 되기전 마침내 어머니의 가슴에서 첫 젓이 나와 아기의 입에 물려봤을 때, 놀랍게도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의식없는 상태로 아기가 젖을 물고 조금씩 삼켰다. 점점 더 삼켰다.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 채. 지금 자신이 넘어오고 있는 경계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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