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능소화 / 조두진 : 400년 전에 부친 편지

능소화(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1998년 4월 안동시 정상동에서 택지 조성 공사를 하던 중 고성 이씨 이응태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무덤에서는 미라화된 이응태의 시신과 아내가 쓴 편지 등이 발견되었다.

이응태의 아내 '원이엄마'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편지를 모티브로 작가는 <능소화>라는 소설을 지었다고 한다.

 

경북 안동에서 택지조성을 위해 분묘이장을 하던 중 한 남자의 미라와 한 통의 한글로 쓰여진 연서가 발견된다. 국문과 교수 '나'는 유물 조사 작업에 참여하여 편지 해독을 맡는다. 그리고 마침 한국에 교환교수로 와 있는 기타노 노부시에게서 편지를 쓴 여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기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일본 간사이 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던 조선 여인의 일기.

임진년 조선 정벌에 참가한 일본 통역병이 피난 떠난 양반가의 글을 가져왔다고 한다.

국문과 교수인 '나'는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글과 일본 박물관에 소장된 여인의 글을 바탕으로 그 당시 일을 재구성했다.

 

<능소화> 줄거리

안동의 만석꾼 집안 '이요신'은 사냥을 나갔다가 주막에서 '하운 스님'을 만난다. 때때로 술친구도 하면서 인연을 이어가던 중 이용신의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스님에서 아들의 사주를 보여준다.

표정이 좋지 않던 하운스님을 보고 이요신은 걱정하고, 스님은 요신에게 말한다.

 

"아드님이 장차 소화꽃을 들고 집으로 오실 것 입니다. 

소화는 원래 이 세상의 꽃이 아니라 하늘의 꽃이라고 합니다. 하늘정원에 있던 꽃을 누군가가 훔쳐 인간세상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움은 이 세상에 따를 것이 없고 사람들이 다투어 어여삐 여깁니다. 

사람은 소화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기 십상이나 그 속에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독이 있습니다.

아드님이 소화꽃의 독을 피할 수 있다면 나라를 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소화꽃의 독을 피해야 합니다."

 

스님의 말을 듣고 요신은 집안의 소화나무를 베어버리고, 둘째 아들 이응태가 혼인할 무렵이 되자 중매쟁이에게 성질 사납고 박색이어서 평생 혼인하지 못할 것 같은 여인을 찾아오라고 한다.

 

중매쟁이는 마침 100리 먼곳에 있는 흥구에 박색에 사납다는 소문이 있는 여인의 집을 찾아가지만 여인의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한다. 

그 이유는 어릴때 강에 빠져 죽을 뻔한 딸 아이를 옆집 일꾼이 살려줬더니 지나가던 스님이 말했다고 한다. 죽었어야할 사람이 살았다고. 그 아이와 인연을 맺은 사람은 반드시 화를 입을 거라고.

이후 그 일꾼이 사고로 죽자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못하게 집안에서만 키운 것이다.

중매쟁이는 큰돈을 받은 이 중매를 성사시키기 위해 자신이 그 땡중을 아는데 사기꾼이라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을 뿐이라고 하며 결국 중매를 성사시킨다.

 

그렇게 성사된 혼인.

사납고 박색인 줄 알았던 여인 '여늬'는 사실 부모님이 아이의 혼사를 막기 위해 일부러 낸 거짓 소문이었다. 아름다운 얼굴을 한 '여늬'를 보고 이요신은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다.

 

<능소화> 결말

하운스님이 말했던 소화꽃에 관한 전설.

하늘정원에 있던 하늘의 꽃이었는데 누군가 훔쳐 인간세상으로 달아났다는 이야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늬'였다. 이미 인간으로 태어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늘꽃을 훔쳐 달아난 게 '여늬'였고, 하늘정원을 관리하던 '팔목수라'는 만 년 동안 소화꽃을 훔쳐간 계집을 찾아 인간세상을 떠돈다.

일곱살때 강에 빠져 죽을 운명이었던 '여늬'는 사실 그때 '팔목수라'에 발견되어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혼인한 여늬와 응태가 사는 집에 남겨진 '소화꽃'을 보고 여늬를 찾아낸 팔목수라는 응태의 목숨을 앗아간다.

 

남편을 먼저 잃고 자식까지 잃자 여늬는 슬퍼하며 집주변에 소화꽃을 심고, 이를 '능소화'라고 이름 붙인다.

하늘을 능히 이기는 꽃이라는 의미의 능소화.

집안의 나무를 베어버려 소화와 인연을 끝어버리려고 했던 이응태의 아버지 이요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색과 사나운 성질을 가진 여인을 맺어주려고 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응태와 여늬는 혼인전에 서로가 혼약자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난적이 있다. 

집밖에 나가지 못하는 여늬가 소화꽃이 핀 담벼락 밖을 살펴보고 있을때 사냥을 나온 이응태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소화꽃으로 만난 인연, 다시 한번의 만남을 기약하며 여늬는 주변에 능소화를 심는다.

 

고성 이씨 이응태 한글편지

안동대 박물관에 전시된 원이 엄마의 편지 (출처 : 우리역사넷)

 

당신이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은 먼저 가셨나요? 나하고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졌고 나는 당신에 대하여 마음을 어떻게 가졌나요? 매번 나는 당신에게 함께 누워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우리 같을까요?”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으니 날 데려가 주세요. 당신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아무리 해도 서러운 뜻이 한이 없어요. 이 내 마음속은 어디다 두고 자식을 데리고 당신을 그리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편지를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에서 이 편지를 보시고 하는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썼습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일러 주세요.

당신은 내 뱃속의 자식이 나거든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을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시는 건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천지가 아득한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니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안타깝고 끝이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어요.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이)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원이 아버지에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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